[음식]요리,약되는 밥상

녹두 이야기

꼬마루소 2007. 10. 18. 22:16

추석 연휴 마지막 날,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주문하며 따로 녹두 빈대떡을 시켰다가 취소했다. 다른 날 같으면 정찬을 더 맛있게 해줄 ‘특별 메뉴’로 손색이 없었지만, 연휴 내내 부엌 한켠, 소쿠리에 널려 있던 녹두전을 비롯한 전류를 생각하니 이건 오버다 싶었다. 그러나 그 ‘하찮은 대접’은 1주일을 못 넘길 것이다. 나날이 내려가는 기온에 따듯한 먹거리는 더욱 그리워질 것이고, 그 중 빈대떡은 김치, 불고기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전통음식으로 인정할 만하니 더욱 좋고, 거기에 ‘녹두’를 첨가하면 빈대떡은 영양 으뜸의 프리미엄급으로 올라간다. 연휴의 기름기가 대략 몸에서 빠지는 순간부터 녹두빈대떡이 다시 대접받을 것임은 자명하다.

잔칫날이나 명절에는 필수적으로 만들었던 녹두 빈대떡. 녹두와의 만남은 녹두를 미지근한 물에 담가 3시간 가량 불리고 손으로 비벼 껍질을 벗기는 것부터 시작한다. 봄 녹두는 봄철에 파종하여 9월 중·하순에 수확하고, 그루 녹두(여름 녹두)는 7, 8월에 파종하여 10월 초에 수확한다. 녹두 껍질을 다 벗긴 다음에는 물을 조금 붓고 맷돌이나 믹서에 간다. 파는 어슷하게 채썰고, 돼지고기와 쇠고기는 납작납작하게 썰어 양념을 하고, 배추김치는 속을 털어낸 후 잘게 썰어 참기름으로 무친다. 녹두 간 것에 양념한 쇠고기, 돼지고기, 배추김치를 섞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 다음 숙주나물과 고사리를 넣는다. 프라이팬에 한 국자씩 떠 둥글게 펴고 실고추와 파를 얹어 노릇노릇하게 지진다. 혹자는 이러한 고사리, 도라지, 김치 등을 ‘쓸데 없는 재료’로, 이들을 섞은 빈대떡을 ‘천박하다’고 혹평하며, 진짜 녹두 빈대떡은 돼지고기에 녹두만 넣으면 족하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각자 입맛대로이다. 그러나 여러 방식 중에서도 돼지고기가 꼭 포함되는 이유는 돼지고기가 다른 육류보다 비타민 B가 많기 때문이다. 이로써 녹두에 부족한 단백질 아미노산인 메치오닌, 트립토판을 보강할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콩에 물을 주어 키운 나물은 콩나물이라고 부르는데, 녹두에 물을 주어 키운 나물은 녹두나물이 아닌 숙주나물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 세조가 좌의정 신숙주에게 녹두 열매의 수입을 권장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1460년 경, 세조는 기근이 들어 배고파하는 백성들을 위해, 빨리 성장하고 쉽게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면서 영양이 풍부한 녹두 열매의 수입을 신숙주에게 명했다. 백성들의 식량으로 널리 활용할 수 있도록 힘쓴 신숙주의 업적이 부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용기의 <조선무쌍요리제법>에는 “세조 때 신숙주가 여섯 신하를 고변하여 죽인 고로 미워하여 이 나물을 숙주라 한 것이다. 이 나물을 만두소로 넣은 때에 짓이겨 넣은 고로, 신숙주를 나물 찧듯하여 숙주라 하였으니…”라는 대목이 있어‘변절자 신숙주’의 의미를 더 부각시키기도 한다. 아무튼 숙주나물은 콩나물보다 영양가가 풍부하며, 녹두 열매로 먹을 때보다 비타민A는 2배, 비타민B는 30배, 비타민C는 40배 이상 증가한다.

탄수화물이 53%, 단백질이 25% 이상 되는 녹두는 영양가가 매우 높다. <식료본초(食療本草)>에서는 녹두는 원기를 보하는 데 좋고 오장을 조화하며 정신을 안정시킨다고 전한다. 또, 풍을 쫓고 피부를 아름답게 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녹두는 노폐물을 해독하며 열을 내리고 식욕을 돋우는 데 탁월하다. 입술이 마르고 입 속이 헐었을 때 피로 회복에 좋으며, 소화를 돕고 오줌이 잘 나오게 한다. 오랫동안 서민들의 영양을 책임진 만큼, 천연 약재로 쓰는 민간요법도 발달했다. 종기가 난 자리에 녹두 삶은 물을 바르면 효과가 있으며, 열이 많아 설사를 하는 사람은 녹두를 갈아 마시면 설사가 멈추었다. 조상들은 독감에 걸려 입맛이 떨어지고 열이 심하면 녹두죽을 쑤어 먹었다. 몸을 차게 하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해열제로 좋았다. 녹두, 팥, 검은콩 세 가지를 각각 같은 분량씩 섞어 물을 넣어 오랜 시간 끓인 삼두탕도 소화불량, 몸살, 소아피부병, 홍역 등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단, 녹두는 몸이 차거나 혈압이 낮은 사람은 삼가야 한다. 특히 한약을 먹을 때는 녹두나 숙주나물은 반드시 피한다. 해독 작용이 강하기 때문에 약의 효능까지 없어질 수 있다.
미용에도 자연식이 떠오르는 요즘에는 녹두가 피부 미용 재료로도 각광받는다. 녹두를 곱게 갈아 따뜻한 물에 이겨 크림처럼 만들어 잠들기 전에 얼굴에 바르면 피부의 기름기가 빠지고 여드름과 주근깨도 줄어든다. 이렇게 녹두를 약으로 쓸 때는 식재료 때와 달리 껍질을 벗겨서는 안 된다. 가족의 건강을 한층 더 생각한다면 녹두 베개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녹두로 속을 채운 베개를 베고 자면 머리가 아프고 목이 뻣뻣한 증상이 사라진다고 한다. 특히 어린이의 경우, 머리가 비뚤어지는 것과 경기를 예방할 수 있고 눈을 밝게 하기도 한다.